오늘 “나만 하는 게 없는 것 같아서, 깃을 뒤져봤다”는 글을 쓰고 났는데, 문득 깃 로그보다 더 오래된 로그가 하나 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블로그다. 2024년 2월부터 2년 반, 80편 남짓.


이 블로그는 성장 곡선이 통째로 남은 기록이었다

시기별로 펼치면 이렇다.

  • 2024-02~03 — 첫 직장 입사 직후. 기술보다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가 주제였다. 남의 코드 읽는 법, 커밋 컨벤션 제안. 스스로를 “말하는 감자”라고 불렀다
  • 2024-04~08 — 5개월 공백
  • 2024-09~2025-03 — 복구. 북스터디 4편, 25일간 16편짜리 데일리 연재, 그리고 실무 트러블슈팅 글들(결제 위젯 중복 렌더, DB 커넥션 고갈, 템플릿 리터럴 타입)
  • 2025-04~2026-06 — 다시 15개월 공백
  • 2026-07 — 한 달에 37편. 사이드 프로젝트 운영일지 14편, k8s·옵저버빌리티·LLM 논문 스터디 21편, 그리고 오늘의 글

재미있는 건 공백의 해석이었다. 나는 안 쓴 시기를 “게을렀던 시기”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타임라인을 겹쳐 보면 블로그가 조용한 시기는 정확히 실무에 가장 깊게 잠겨 있던 시기였다. 첫 공백은 신입 적응기였고, 두 번째 공백은 이직과 함께 화면(프론트) → 계약(API 스키마) → 뼈대(DB·엔진)로 일의 층이 내려가던 시기였다. 오늘 글에서 “내 일은 보이지 않는 종류로 바뀌었다”고 썼는데, 블로그의 공백이 그 증거였던 셈이다.


변하지 않은 것 — 배우는 방식

2년 반 동안 글의 주제는 JS 기초에서 쿠버네티스와 LLM 논문까지 완전히 바뀌었는데, 글이 만들어지는 방식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 둘을 맞붙여 비교하기. 초기 글 절반이 뭔가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는 글이었다 — preventDefault vs stopPropagation, Thread vs Buffer, 심지어 차이가 확장자뿐인 yaml vs yml까지 굳이 비교 구도로 썼다. 2026년의 글도 똑같다 — Langfuse vs Datadog 5축 비교, ReAct vs Toolformer
  • 유래부터 찾기. “Slug는 신문사에서 유래했다”부터 “Ajax는 새 기술이 아니라 기존 기술의 조합”까지, 이게 왜 생겼는지부터 묻는 습관
  • 일상적인 비유. CDN을 아이폰 대리점으로, 상태 관리를 백화점 입점으로, Pod를 택배 박스로. 2026년 k8s 시리즈에는 8편 전부에 비유 표가 들어가 있다
  • 실무에서 얻어맞은 자리를 글로 되갚기. 2024년의 “버튼 이벤트 버그 → 이벤트 전파 공부”가, 2026년엔 “청구서 폭탄 → 실시간 아키텍처 재설계 글”이 됐다. 달라진 건 사건의 크기뿐이다

배우는 스타일이라는 게 그냥 취향인 줄 알았는데, 2년 반치를 한 번에 놓고 보니 취향이 아니라 성격이었다.


나를 정의하는 습관은 따로 있었다

AI가 가장 일관된 패턴으로 꼽은 건 기술이 아니었다. 감으로 내린 결론을 실측으로 반박하는 것.

  • “나만 하는 게 없다”는 불안 → 깃 로그 집계로 반박 (오늘 글)
  • “이 기능 때문에 느려졌나” → pg_stat_statements 실측으로 첫 가설 폐기, 진범은 3.5개월간 569만 번 쌓인 N+1 (운영일지)
  • 새 기능의 리텐션 수치가 예쁘게 나왔는데도, 관측 기간이 11일뿐이고 표본이 수십 명이고 다른 변수가 겹쳐 있다는 이유로 효과가 있었다고 발표하지 않음 (운영일지)
  • 레이팅 알고리즘 구현을 감으로 검산하지 않고 원 논문의 표준 검증 벡터를 테스트 케이스로 사용

그리고 그 짝이 되는 습관 — 틀린 첫 판단을 지우지 않고 글의 뼈대로 남기는 것. 2024년 3월, 버그를 못 잡은 첫 시도를 그대로 적었던 글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그거 진짜 근본 원인 맞아?”라는 질문에 진단을 철회하는 과정 자체가 글의 구조가 됐다.

이건 좀 뭉클했는데, 오늘 아침의 나는 새로운 일을 한 게 아니라 2년 반 동안 훈련한 동작을 자신에게 처음 적용해본 것뿐이었다.


변한 것 — 도구를 쓰는 방식

솔직하게 남겨둘 게 하나 있다. 2025년 초의 데일리 연재에는 초안 도구를 쓰던 흔적이 미교정 상태로 남아 있다. 한 달 내내 “Virtual DOM”을 “Visual DOM”으로 쓴 글이 있고, 기계 번역투 오역도 있다. 그 시기의 목표는 정확성이 아니라 리듬 유지였고, 그 선택 덕에 5개월 공백에서 복구된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같은 도구를 다르게 쓴다. 먼저 쓰고, 공식 문서와 원문으로 대조하고, 고친 내용은 별도 커밋으로 남긴다. 최근 스터디 글에는 “구체 수치는 뭉뚱그렸다, 정확한 인용이 필요하면 원문과 대조할 것”이라는 안내가 붙고, 검증이 통과한 편은 “이번엔 전부 맞았다”고 그것도 기록한다. 도구가 바뀐 게 아니라, 도구의 결과를 검증하는 절차가 생겼다.


첫 회고와 오늘

이 블로그의 첫 회고(2024년 2월) 제목은 “게을러지지 않기 위하여”였다. TRY 항목에는 “깃허브 잔디를 더 열심히 심자”가 있었다.

2년 반 뒤의 나는 월 700~800 커밋을 찍으면서 “나만 하는 게 없는 것 같아”라는 글을 썼다. 불안은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다. 다만 2024년의 나는 그 불안을 다짐으로 받았고, 지금의 나는 데이터로 반박한다. 불안을 없애는 데는 2년 반이 모자랐지만, 불안을 다루는 방법은 확실히 배웠다.

그리고 그 첫 회고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정리하자. 무엇이든 정리하자. 그냥 정리만 하는 게 아니라 ‘잘’ 하자. 정리의 기준은 내가 되지 않고, 누가 봐도 언제 봐도 좋은 정리를 하자.

취업 첫 달, 아무것도 모르던 시기에 적은 다짐인데 — 운영일지 시리즈도, 정책 문서도, “보이지 않는 일은 번역해줬을 때만 보인다”던 오늘의 처방도 전부 이 문장의 실행이었다. 나는 꽤 오래전부터 같은 사람이었다.


마무리

물론 좋은 얘기만 나온 건 아니다. 초기 글 대부분의 발행 시각이 21:07로 복붙되어 있고, 파일명과 날짜가 어긋난 글이 여럿이고, 시리즈마다 카테고리 규칙이 다르다. 몰아 쓰고 날짜만 나눠 적은 흔적도 그대로 들켰다. 이 글도 아마 그 습관 위에 얹힐 거다.

그래도 이번에 확실해진 게 하나 있다. 남에게 보여주려고 쓴 80편이, 결국 나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기록이 되어 있었다. 회고는 기억으로 하는 게 아니라 기록으로 하는 거고, 기록은 쌓인 뒤에야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알려준다.